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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

설악산 공룡능선 고행기

산이슬 2015. 6. 12. 02:19

  그동안 동해번쩍 서해번쩍 여행을 다녔었다. 내게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마음가는대로 발길을 옮겼다.

 기억에 많이 남는 장소도 있었고 갔다 왔지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장소도 있었다.

 갔다 오기 위해 돈과 시간을 썼지만 기억이 안나는 장소들이 생긴 이유는 이렇다.

 기억을 되새길만한 사진과 같은 자료들이 남아있지 않거나 그 여행지를 여행하는 시간동안 힘이들지 않았거나.

 

  체득되는 경험들의 기억지속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20대 초반 지리산을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웃도어 장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고 겁도 상실했었다. 겨울 지리산을 동네의 뒷산가듯이 생각하며 올라갔다. 백무동 계곡을 네발로 기다시피 올라갔고 땀이 나면 오리털파카를 벗었으며 땀이 말라 추워지면 다시 파카를 입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옷을 입었다하고 벗었다하는 수행의 반복이었다.그렇게  열심히 산을 네발로 기어올라 세석대피소에서 1박을 한후 세석 평전을 지나 천왕봉에 올라서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은 지옥이였다. 뾰족뾰족한 바위들때문에 바닥이 연한 운동화를 신은 나의 발을 찌를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고, 많이 힘이 들었던 지리산 중산리 하산길이였다.

 

 

 

 청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오리털파카로 천왕봉에 오르다.

 

   

 

  10년이 훌쩍 넘었어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 지리산 등반기와 마찬가지로 설악산 공룡능선의 등반 기억도 내 기억에 오래남을 것 같다. 당일치기 등산으로는 이 공룡능선이 가장 힘든 등반이였다. 낭떨어지와 절벽을 마주하면서 겁도 많이 먹었었고 뜨거운 태양빛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대한민국 100대 비경 중 최고로 뽑힌다는 설악산 공룡능선은 그 아름다움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공룡능선의 시작 마등령에 도착했을때 그 탁트인 전망대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뾰족하고 첩첩한 봉우리들을 아주 잘 볼 수 있었고, 그 것을 보며 느낀 자연의 장엄함은 앞으로 잊을 수가 없을 듯 하다.  등반내내 정말 힘들었지만 그만큼의 비경을 설악산은 보여 주었고 한번쯤 고행길이라고 생각하며 등반해 볼만한 가치를 주었던 공룡능선이었다.

  

  한살이라도 젊었을때 , 두 다리 싱싱할때 한번쯤은 꾸불꾸불한 용의 능선을 오르기를 추천한다.

 

 

 

 

백담사~오세암~마등령 3시간 소요

마등령~1275봉~희운각대피소 4시간 소요 (공룡능선)

 

 

 

 

 

 

 

 

 

 

공룡능선의 시작인 마등령에서 너무 멋진 설악산의 자태를 볼 수 있었다.

 

 

 

 

 

 

 

 

로프도 타고 암벽도 살짝 오르는 고행길을 5시간 내내 가야한다.

 

 

 

 

 

 

 

 

 

 

뾰족뾰족한 공룡능선을 멀리서 보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덧 같다. 하얀절벽과 뾰족뾰족한 봉우리들, 그리고 흑색으로 표현된 나무들.

 

 

 

 

겸재 금강전도

 

 

 

5시간 가량 공룡능선의 봉우리들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눈에 저장시켰다.

 

 역시 고생하고 힘든 만큼 뇌에 저장이 잘된다. 몸을 고되게 한 경험들이 기억 잘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가끔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실수했던 과거의 기억이 생각나지 않아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선택과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데 이에 반해 잘못된 선택을 해서 몸이 안전하지 않았던 기억들은 바로바로 생각이 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몸이 다치지 않도록 잘 기억나게 한 유전자의 힘 아닐까 싶다. 예를들어 지리산 사건 후 나는 등산갈때는 항상 등산화를 챙겨신는다. 등산화 신는 것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공룡능선은 등반은 끝이 났고, 나는 전날 숙박을 위해 예매해두었던 양폭대피소로 향했다.

 

 

 

 

 

 

 

 

10인이 사용할 수 있는 양폭대피소는 조용하고 하산길에 이용하기엔 참 좋았다. 대피소 앞에 있는 계곡 소리를 듣고 1박을 했다.

 

 

 

 

큰 바위에 구멍이 나있다. 구멍안에는 작은 법당이 있다.비선대에서 본 금강암이다.

 

 

 

 

 

 

금강암에서 본 절경.

 

 

양폭대피소에 하루밤을 자고 다음날 비선대까지 내려온 후 금강암가는 표식을 보았다. 그냥 하산을 할까 올라갈까 갈등을 하다가 왕복 1시간 거리인 금강암에 올랐는데 그 경치가 정말 좋았다. 물론 올라가는 철제 다리에서는 내 다리도 후들거렸다.

 

 

 

소공원 입구의 중국인 관광객들 

 

 

 

 

발바닥아 고마워~~

 

 

 

 

 

 혼자 떠난 1박 2일의 설악산 공룡능선 고행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힘든 육체적 고행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설악산 공룡능선 고행기도 나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몸으로 기억한 것들은 그 기억이 정말 오래간다는 사실이다.

 좋은 고전을 읽고 기억해볼려고 빨간줄 치고 노트에 옮겨적었어도 그동안 단 한구절이 기억이 안나서 힘들었는데 기억할 방법도 찾은 것 같다. ㅎㅎ